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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객관식 문제와 AI

생각을 잃어버린 시대, 다시 문제를 묻다.
정답을 넘어서, 시스템을 볼 수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객관식 문제에 익숙한 사회에서 살아왔다. 문제는 이미 정의되어 있었고, 답은 정해진 보기 안에 있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묻지 않아도 되었고, 왜 이 문제가 중요한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주어진 틀 안에서 가장 그럴듯한 답을 고르는 능력이 곧 우수함의 기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전제를 내면화했다. 문제는 밖에서 주어지고, 답도 밖에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삶은 한 번도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 적이 없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는 대부분 명확하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과 결정이 요구된다. 문제란 본질적으로 내가 원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다. 이 차이를 인식하고, 그것을 문제로 규정하는 순간부터 사고는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대신 이미 정의된 문제를 빠르게 푸는 훈련을 반복해 왔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는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말하는 데 서툴러졌다.

 

 

모범생은 왜 사회에서 흔들리는가

 

모범생의 사전적 의미는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이다. 다시 말해, 이미 정해진 기준과 틀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이다. 기준이 명확한 환경에서는 모범생이 가장 안정적이다.

 

그러나 사회에는 정답도, 채점 기준도 없다. 문제 자체를 정의해야 하고, 그 문제를 만들어낸 구조를 이해해야 하며,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 이때 객관식 사고에 익숙한 사람은 쉽게 흔들린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고, 눈앞의 정답을 찾느라 문제의 구조를 보지 못한다. 이는 개인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사고 훈련의 방향이 만든 결과다.

 

AI는 객관식 사고의 완성형이다

 

AI 기술의 발전은 이 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AI는 답을 잘해준다. 빠르고, 정확하며, 평균적으로 매우 그럴듯하다. 잘 정의된 문제, 즉 객관식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AI는 문제를 정의하지 않는다. AI는 주어진 질문에 답할 뿐이다. 질문이 잘못되면 답도 잘못된다. 문제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AI의 답을 받아들이는 순간, 판단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된다. AI 시대의 핵심 역량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물을지 결정하는 힘이다.

 

 

생각은 서술이 아니라 구조다

 

생각은 단순히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다. 생각이란 복잡한 현실을 구성요소와 관계,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는 과정이다. 즉, 생각의 본질은 서술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서술형 사고는 객관식 사고를 깨는 데는 유용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말은 늘어나도 구조가 없으면 주장은 감정이나 경험의 나열로 끝나기 쉽다.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것은 현상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보는 힘, 곧 시스템 사고다.

 

시스템 사고는 문제를 ‘사건’이 아니라 ‘구조’로 본다

 

시스템 사고는 개별 사건에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이 결과는 어떤 요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만들어졌는가, 어떤 피드백이 반복되고 있는가, 부분적인 최적화가 전체에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가를 살핀다.

 

이 사고방식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를 묻는다. 갈등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보다, 그 갈등을 낳는 구조를 드러낸다.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서로 다른 위치와 관계에서 나온 결과로 이해하게 만든다.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은 시스템 사고의 언어다

 

시스템 사고는 머릿속에서만 머물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를 외부로 드러내는 도구가 모델링이다. 무엇을 요소로 보고, 어떤 관계를 설정하며, 어떤 가정을 두는지 명확히 하는 순간, 생각은 검증 가능해진다.

 

시뮬레이션은 그 구조를 시간 속에서 시험하는 과정이다. 가정이 바뀌면 결과가 달라지고, 그 차이는 실패가 아니라 학습이 된다. 시뮬레이션은 틀려도 되는 공간이며, 다름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장이다. 이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생기는 갈등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훈련이기도 하다.

 

VUCA 시대, 디지털트윈이 필요한 이유

 

VUCA 환경의 본질은 불확실성 자체보다 변화의 속도에 있다. 상황은 빠르게 변하고, 판단이 늦어질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인간은 복잡한 시스템의 모든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서 처리할 수 없다.

 

디지털트윈은 현실 시스템을 가상 공간에 복제해 다양한 선택을 동시에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판단을 연습하기 위한 환경이다. 디지털트윈은 시스템 사고를 실제 의사결정과 연결해 주는 실행 인프라다.

 

 

객관식 사고를 넘어서 시스템 사고로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답이 아니다. 더 똑똑한 AI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문제를 정의하고, 구조를 읽고,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사고 체계다.

 

객관식 사고는 효율적이지만, 세상을 편향되게 만든다. 서술형 사고는 생각을 표현하게 하지만, 구조가 없으면 한계에 부딪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둘을 넘어서는 시스템 사고다.

 

AI는 답을 잘해준다.

 

그러나 어떤 시스템에서 나온 답인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문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AI가 덜 똑똑해서도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문제를 사건으로만 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보지 못해온 사고방식에 있다. VUCA가 심화될수록 정답은 더 빨리 바뀌고,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정답을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시스템을 읽고 문제를 정의하는 힘이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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