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S S&C

아인스 칼럼

기술 사대주의와 WAiSER

메타버스의 기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피지컬 AI 앞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

한국에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늘 비슷하다. “우리도 AI 해야지”, “디지털트윈 안 하면 뒤처진다”, 요즘은 여기에 “피지컬 AI가 대세다”가 더해진다. 변화에 민감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이 말들에는 공통된 결핍이 있다. 무엇을 해결하려는지, 어떤 판단을 하려는지, 그 판단이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판단은 빠지고 구호만 남는다. 이 순간 기술은 방향이 아니라 지시가 되고, 책임은 아래로 밀려난다.


기술 사대주의는 외국 기술을 맹신하는 태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판단 없이 남의 선택을 그대로 가져와 “해야 한다”로 바꾸는 순간에도 발생한다. 우리는 이미 이 구조를 한 번 겪었다. 메타버스가 그랬다.


기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외주화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유행하던 시기, “글로벌 빅테크가 한다”, “미래 산업이다”, “안 하면 뒤처진다”는 말이 앞섰다. 그러나 정작 왜 필요한지, 무엇을 판단하려는지에 대한 질문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목적 없는 공간 구축이었다. 플랫폼은 만들어졌지만 활용은 없었고, 콘텐츠는 있었지만 판단은 없었다. 결국 남은 평가는 “메타버스는 거품이었다”였다.


하지만 거품이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판단 없이 도입한 방식이었다. 판단을 외주화한 채 기술을 숭배하면, 실패의 책임은 언제나 기술이 떠안는다.




모르는 세계는 과대평가되고,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세계를 과대평가한다. 해외 기술과 사례는 완성된 결과만 전달되고, 시행착오와 실패는 지워진다. 반대로 가까운 것은 잘 안다고 착각한다. 같은 언어, 같은 공간이라는 이유로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해외에서 말하면 방향이 되고, 내부에서 말하면 의견으로 취급된다.


이때 떠오르는 속담이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 불빛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정작 발밑은 보지 못하는 상태다.


미국에 회사를 세워 다시 들여오는 이상한 풍경


이 인식 구조는 기술 신뢰의 방향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미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그 법인을 통해 기술과 서비스를 다시 들여오는 ‘역수입’ 사례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기술도 사람도 문제의식도 모두 한국에서 출발했지만, 한국 회사라는 이유로 신뢰받지 못한다. 대신 미국 법인과 영문 자료, 해외 레퍼런스라는 외피를 씌우자 그제야 “검증된 기술”이 된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가까운 것을 믿지 못하는 판단 구조의 문제다. 등잔은 이미 손에 들고 있었지만, 남의 불빛을 빌려야만 길을 찾는 셈이다.


시행착오는 기술 불신으로 확대된다


판단 없이 내려온 기술 지시는 필연적으로 시행착오를 낳는다. 문제 정의 없이 시작한 AI는 데이터 수집으로 끝나고, 판단 목적 없이 시작한 디지털트윈은 3D 모델로 남는다. 기대한 효과가 나오지 않으면 결론은 늘 같다. “AI는 아직 멀었다”, “디지털트윈은 실효성이 없다.” 실패의 원인은 판단 부재였지만, 책임은 기술이 떠안는다. 메타버스에서 경험한 기술 불신의 경로가 그대로 반복되는 이유다.



피지컬 AI는 더 위험하게 반복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피지컬 AI는 메타버스보다 더 위험하게 같은 길을 갈 가능성이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눈에 보이고 실제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신한다”, “자율적으로 판단한다”는 말이 앞서지만, 무엇을 판단하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잘못된 판단의 책임은 누가 지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부족하다.


메타버스는 실패해도 “안 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피지컬 AI의 판단은 현실에 물리적 결과를 남긴다. 판단 없는 도입은 비효율이 아니라 사고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피지컬 AI에서의 기술 사대주의는 단순한 유행 추종이 아니라 위험 관리 실패가 된다.


WAiSER가 다른 이유


한국디지털트윈연구소(KDT Lab)는 디지털트윈을 유행 기술이 아니라 판단과 책임의 도구로 정의해 왔다. 출발점은 “AI를 하자”, “피지컬 AI를 도입하자”가 아니라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가”였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고, 아는 것은 모델로 만들고, 모르는 것은 가설로 남긴 채 가상실험으로 선택의 결과를 비교·검증하는 구조를 먼저 설계했다.


이 철학이 구현된 도구가 WAiSER다. WAiSER는 판단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대신 판단을 회피할 수 없게 만든다. 누가 말했다가 아니라 왜 이 선택을 했는지가 남도록 구조를 바꾼다. 피지컬 AI 역시 이 구조 없이 현실로 내려오면 안 된다.



우리는 왜 같은 실패를 반복하려 하는가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AI를 할 것인가, 디지털트윈을 할 것인가, 피지컬 AI를 도입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왜 이미 메타버스로 한 번 겪은 실패를, 더 위험한 형태로 반복하려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기술은 빌릴 수 있다. 그러나 판단과 책임은 빌릴 수 없다. 미국에 회사를 세워 다시 들여오는 선택이 아니라, 이미 손에 쥔 등잔으로 발밑을 밝히는 선택이 필요하다. “우리도 해야지”라는 말이 또 하나의 메타버스, 또 하나의 기술 불신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 말 앞에는 반드시 이 질문이 와야 한다.


무엇을 판단하려는가.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