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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유한한 바둑판에서 무한한 사회로

왜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이 필요한가

알파고 이후 커제 9단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가 지난 수천 년간 개발하고 검증한 여러 전술을 구사했지만, 컴퓨터는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 말의 충격은 단순히 바둑에서 인간이 졌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이 ‘옳다고 믿어온 방식’ 자체가 최적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는 점에 있다.

 

바둑은 19×19라는 유한한 판 위에서, 규칙도 고정되어 있고 승패라는 목표도 명확한 게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수천 년 동안 국소 최적에 머물렀고, AI는 인간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수를 통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여기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유한한 바둑판에서도 인간의 직관과 경험이 최적이 아니었다면,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한 사회·산업 문제에서는 어떨까?

 

 

사회·산업 문제는 바둑보다 훨씬 복잡하다

 

사회와 산업 문제는 바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바둑은 상태공간이 닫혀 있지만, 사회는 열려 있다. 참여자는 바뀌고, 환경은 변하며, 규칙 자체가 수시로 수정된다. 바둑의 목적함수는 하나지만, 사회와 산업은 효율·안전·비용·공정·윤리·지속가능성이 동시에 충돌한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실패 비용이다.

 

바둑에서는 지면 끝이지만, 사회와 산업에서는 사고, 붕괴, 생명과 신뢰의 상실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인류는 오랫동안 최적해를 찾는 대신, 실패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 왔다.

 

경험을 규칙으로 만들고, 관행을 절차로 고정하고, 검증되지 않은 선택은 금기로 묶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생존에는 유효했지만, 복잡도가 임계점을 넘은 오늘날의 사회·산업 문제에는 명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현상 데이터는 과거를 설명할 뿐이다

 

이 한계는 AI 논의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현장 데이터를 더 모으면 된다”, “학습량이 부족하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현상으로 관찰된 데이터는 아무리 많이 모아도 본질적으로 과거의 기록이다.

 

사고가 난 뒤의 로그, 성공 이후의 통계, 문제가 터진 다음의 보고서들. 그 안에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 시도하지 않았던 정책, 의도적으로 피했던 실패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상 데이터 기반 AI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자주 일어났는가”는 잘 말해주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에는 답하지 못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과다. 현상 데이터는 상관관계는 풍부하지만,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정상 상태의 데이터만 쌓인 결과, 우리가 정말 알고 싶은 임계점과 붕괴 조건은 거의 담겨 있지 않다. 이것이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학습해도 외삽(Extrapolation) 되지 않는 구조적 이유다.

 

알파고가 바둑을 이긴 진짜 이유

 

알파고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계산이 빨랐기 때문이 아니다. 가상대국이라는 실험 공간에서 무수한 실패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번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지지만, AI는 수백만 번의 패배를 통해 인간이 도달하지 못했던 선택지를 탐색했다. 이 차이는 바둑을 넘어 사회와 산업 문제에 그대로 적용된다. 현실에서는 실패할 수 없기 때문에, 가상공간에서 먼저 실패해야 한다.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의 역할

 

디지털트윈은 단순한 시각화 기술도,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도구도 아니다.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의 핵심은 이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선택을 시험하고

 

변수를 통제해 인과를 드러내며

 

실패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시스템이 어디까지 버티는지를 확인한다

 

즉, 데이터를 소비하는 AI에서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구조가 없으면 AI는 과거를 정교하게 흉내 내는 도구에 머문다. 이 구조가 있을 때 비로소 AI는 판단과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술이 된다.

 

결론: 유한한 바둑판의 교훈

 

유한한 19×19 바둑판에서도 인간이 옳다고 믿어온 전술은 최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한에 가까운 사회·산업 문제를 경험과 관행, 그리고 과거 데이터만으로 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미 위험한 가정이다.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은 AI를 쓰기 위한 옵션이 아니라, AI가 사회와 산업에서 책임 있게 작동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유한한 바둑판에서 드러난 교훈은 분명하다. 미래를 결정하려면, 과거를 학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먼저 가상공간에서 실패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는 아직도 실패를 현실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실패를 가상으로 옮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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