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파라미터와 AI
모델, 데이터, 검증, 그리고 인간의 역할
AI를 둘러싼 논의는 대개 성능에서 출발한다. 얼마나 정확한가, 얼마나 사람처럼 말하는가, 얼마나 자율적으로 행동하는가. 그러나 성능이 좋아질수록 더 중요한 질문은 오히려 흐려진다.
이 AI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우리는 그 판단을 왜 믿으려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네 가지를 함께 봐야 한다. 모델, 파라미터(parameter), 데이터, 그리고 검증이다.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로 갈수록, 이 네 가지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된다.
모델이란 무엇인가
모델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모델은 현실을 이해하고 다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순화한 표현이다.
현실의 모든 요소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선택한다. 무엇을 포함할 것인가, 무엇을 생략할 것인가,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가. 이 선택의 결과가 모델이다.
그래서 모델은 기술적 산물이기 이전에,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정의 집합이다. 모델이 달라지면 같은 현실을 보고도 전혀 다른 판단에 도달한다.
파라미터는 모델의 성격을 고정한다
모델이 틀이라면, 파라미터는 그 틀 안에서 행동 방식을 고정하는 기준이다. 파라미터는 입력처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값이 아니다. 입력을 어떤 규칙으로 해석할 것인지를 미리 정해 둔 기준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파라미터가 다르면 다른 시스템이 되고, 같은 입력이라도 파라미터가 다르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파라미터는 숫자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굳어진 자리다.
파라미터는 상태나 결정이 아니다
파라미터는 상태(state)나 결정(dicision)과 구분되어야 한다.상태는 시간에 따라 변하며 현재 상황을 나타낸다. 결정은 그 상태에서 선택된 결과다. 반면 파라미터는 상태가 어떤 법칙으로 변할지를 규정하는 기준이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우리는 구조의 문제를 운용의 문제로 착각하게 된다. 상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이고, 파라미터는 “어떤 규칙으로 움직이는가”다.
AI는 모델 위에서만 판단하고 행동한다
AI는 현실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AI는 언제나 모델을 통해서만 현실을 본다. 입력이 들어왔을 때 무엇을 중요하게 볼지, 어떤 선택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할지, 어디까지를 허용할지는 모두 모델과 파라미터가 미리 정해 놓은 범위 안에서 결정된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AI의 출력을 인간의 판단처럼 오해하게 된다.
LLM의 파라미터, 지식이 아닌 구조
대규모 언어모델(LLM)은 언어 세계를 하나의 모델로 만든다. 이 모델은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문법, 의미, 맥락, 상식이 얽힌 언어의 관계를 확률적 구조로 압축했을 뿐이다.
수십억, 수조 개의 파라미터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관계 표현의 해상도다. 컨텍스트와 내부 상태는 변하지만, 파라미터는 추론 과정에서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LLM의 답은 언제나 모델과 파라미터가 허용한 공간 안에서의 선택이다.
에이전트 AI에서 파라미터는 판단 기준이 된다
에이전트 AI로 가면 AI는 더 이상 답만 생성하지 않는다. 목표를 가지고 행동을 선택한다.
여기서 파라미터는 말투나 표현이 아니라, 무엇을 중요하게 보고, 어떤 행동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할지를 정한다. 보상 함수의 가중치, 목표 간 우선순위, 위험 선호도는 모두 파라미터다. 겉으로 보면 자율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설계자가 고정해 둔 기준 안에서만 움직인다.
피지컬 AI에서 파라미터는 곧 안전이다
피지컬 AI에서는 문제가 더 직접적이다. 여기서 파라미터는 정보 처리 기준이 아니라 힘, 속도, 에너지, 안정성과 직접 연결된다.
제어 이득 하나, 임계값 하나가 사람의 안전과 물리적 사고를 가른다. 이 단계에서 파라미터는 설정값이 아니라 안전 조건이자 책임의 경계가 된다.
데이터는 모델을 현실 쪽으로 밀어붙인다
모델은 가정이고, 파라미터는 기준이라면, 데이터는 그 모델을 현실 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인간은 파라미터 값을 직접 정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데이터를 보여줄지 선택한다. 파라미터는 그 데이터에 맞춰 최적화된 결과다.
그래서 데이터는 중요하다. 그러나 데이터는 언제나 과거이며, 무엇이 옳은지나 누가 책임지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AI의 답과 행동은 검증이 필요하다
AI의 출력과 행동은 모델 + 파라미터 + 데이터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진실도, 판단도 아니다. AI는 자신의 답이 왜 옳은지 설명하지 못하고, 틀렸을 때 책임질 수도 없다.
특히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로 갈수록 검증 없는 사용은 곧 위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AI의 답과 행동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AI를 도구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다뤄야 한다. 모델이 무엇을 생략했고, 어떤 가정을 담고 있는지를 먼저 묻지 않으면, 그 AI는 이해되지 않는다.
둘째, 파라미터를 성능 요소가 아니라 책임 요소로 관리해야 한다. 이 기준을 누가 정했고,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 쓸 준비가 안 된 AI다.
셋째, 데이터를 양이 아니라 의미로 다뤄야 한다. 이 데이터가 어떤 세계를 정상으로 만들고, 어떤 상황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지 점검해야 한다.
넷째, AI의 답을 결론이 아니라 가설로 다뤄야 한다. 실행 전에 반드시 검증 단계를 거쳐야 한다. 말이 아니라 실험으로, 가능하다면 가상환경에서 먼저 실패시켜야 한다.
다섯째, 가상실험과 디지털트윈을 기본 인프라로 삼아야 한다. 복잡한 시스템에서 현실 실험만으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역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인간은 계산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판단 기준을 정하고, 검증하고, 책임진다.
맺으며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이 AI가 똑똑한가?”가 아니라 “이 판단의 책임을 인간이 질 준비가 되었는가?”
모델은 세계관이고, 파라미터는 기준이며, 데이터는 압력이고, 검증은 책임이다. AI를 제대로 다룬다는 것은 AI를 믿는 일이 아니라, 판단을 끝까지 인간의 책임 구조 안에 두는 일이다.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시대에 이 질문을 회피하는 순간,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