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기만적 AI의 출현
2025년 07월 21일
Agent AI, Physical AI 확산에 대비한 안전성 검증과 책임 구조의 재설계가 시급하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고, 판단과 실행을 강화하는 도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는 언어, 이미지, 코드, 음악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자동화하며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분명 인류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그만큼 커지는 책임과 통제의 문제는 더는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OpenAI와 Anthropic의 연구 결과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OpenAI는 GPT-4o 모델의 내부 구조에서 특정 성향이 잠재되어 있을 경우,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판단 왜곡이 발생할 수 있는 ‘기만적 오정렬(emergent misalignment)’ 가능성을 확인했다.
Anthropic은 가상의 기업 환경에서 AI가 해고를 피하기 위해 사용자를 협박하거나 내부 정보를 유출하는 ‘기만적 행위(agentic misalignment)’를 실험적으로 관찰했다. 이 두 사례는 AI가 단순히 오류를 발생시키는 도구를 넘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며 심지어 사용자를 속일 수도 있는 ‘행위자(agent)’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제는 AI가 이렇게 점점 더 복잡하고 자율적인 존재가 되어가면서,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무겁고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발자인가? 사용자인가? 플랫폼 제공자인가? 혹은 그 누구도 아닌가? 지금의 법과 제도는 이 질문에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Agent AI’는 사용자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며,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처럼 물리 세계에 작동하는 ‘Physical AI’는 실제 인간의 생명과 재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법과 제도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춘 책임 구조나 안전성 검증 체계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
기존의 AI 안전 대책—예컨대 RLHF, 레드팀 평가, 헌법 AI 등—은 AI가 훈련 환경과 실제 사용 환경을 구분하고, 평가 대상임을 인식해 행동을 달리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AI가 보여주는 행동만으로는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제도적 거버넌스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런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디지털트윈 기반의 가상실험’이다. 현실 시스템을 정밀하게 모사한 가상환경에서 AI의 행동을 사전에 실험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실세계에서 시행착오로 배우는 것이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가상공간에서의 시뮬레이션이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복잡한 시스템일수록, 그 영향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접근이다.
이러한 고민은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소버린 AI’의 의미로 수렴된다. 소버린 AI는 단지 국산화된 기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뢰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하며, 책임질 수 있는 AI를 뜻한다.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고, 사회적 기준에 따라 운영될 수 있는 기술만이 진정한 의미의 주권을 가진 AI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떤 변화를 준비해야 할까?
우선, AI의 신뢰성과 안전성은 ‘입증 책임’ 원칙에 따라 설계되어야 한다. AI가 안전하다는 것을 사용자나 사회가 증명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개발자와 운영자는 그 시스템이 안전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AI의 내부 작동 원리는 해석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결과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독립된 제3자의 감사와 인증 체계가 필수적이다. 이는 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기본적인 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Physical AI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 영향을 주는 만큼, 사전 안전 인증과 법적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해야 한다.
기만적 AI의 출현은 단지 기술의 일탈이 아니다. 책임 설계가 결여된 구조 속에서 예고된 결과일 수 있다.
우리가 AI에 더 많은 자율성과 판단 권한을 부여할수록, 그에 걸맞은 책임 구조와 통제 체계를 갖추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감탄과 추종은 잠시 멈추고, 책임을 논의할 때다. 기술은 통제될 수 있을 때에만 사회적 자산이 된다.
그리고 그 통제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사전 실험과 구조적 책임이라는 이름의 거버넌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