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신조어와 개념
2025년 11월 04일
세상이 바뀔 때, 사람들은 먼저 말을 만든다.
신기술이 등장하면 새로운 용어가 생기고, 그 말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변화와 혼란, 기대와 두려움을 압축해서 담는다.
요즘 AI 분야에는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소버린 AI’ ‘에이전틱 AI’ ‘자율성 부채’ ‘가디언 에이전트’ ‘에이전트 워싱’…
용어만 보면 마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 같지만, 문제는 그 개념이 명확하지 않을 때 생긴다.
말이 앞서고 개념이 따라오지 않으면
신조어가 많아질수록 생기는 첫 번째 문제는 의미의 혼란이다. 각자 다른 해석을 하면서, 같은 말을 하고도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에이전틱 AI’를 단지 지시를 자동화하는 도구로 이해하고, 다른 누군가는 스스로 판단하고 협업하는 AI 팀원으로 생각한다.
개념이 모호한 신조어는 결국 판단과 책임, 기대와 성과를 흐리게 만든다.
누군가는 “에이전트 기반”이라며 기술을 과장하고, 다른 누군가는 실제보다 지나치게 경계하거나 회의한다. 혼란은 결국 신뢰의 상실로 이어지고, 혁신의 동력조차 약화된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 개념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신조어가 등장하면 그 의미와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형식적 용어 정의가 아니라, 어디까지를 포함하고 어디부터는 아니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들어졌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단어 하나에도 ‘철학’과 ‘취지’가 담겨야 한다. 이것 없이 만들어진 용어는 헛된 유행어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 용어의 탄생 배경과 목적을 공유해야 한다
말은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신조어가 생겨난 기술적, 사회적, 정책적 배경과 그 용어를 왜 써야 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토론할 장이 필요하다.
단지 발표 자료나 보고서 한 줄로 끝나면, 그 용어는 오해를 낳고, 왜곡되어 사용되며, 결국 버려진다.
- 실행 가능한 구조와 연결되어야 한다
개념은 말로만 존재하면 안 된다.
실제로 구현 가능한 구조, 메커니즘, 사례와 연결되어야 한다. Agentic Workflow’라고 말한다면, 그게 어떤 흐름이고 어떤 기준에서 “에이전트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를 실제 워크플로우, 도구, 메트릭과 연결해서 설명해야 한다.
신조어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지만
말은 언제나 생각보다 앞서 달린다. 하지만 그 말에 개념이 따라붙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게 된다.
말이 먼저 만들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며, 어떤 행동을 이끄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말에 끌려다니는 꼴이 된다.
결론 – 말은 방향이다
신조어는 새로운 현실에 붙이는 이름이다. 개념은 그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태도다.
이 둘이 같이 가지 않으면, 변화는 혼란이 되고 기대는 오해로 바뀐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을 만들되 개념을 정립하고, 개념을 만들되 실행 가능하게 하고, 실행을 하되 본래의 취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만든 말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된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에게도 조용히 묻게 된다. 나는, 개념도 제대로 모른 채 신조어만 떠들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