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정적 시스템, 동적 시스템, 그리고 AI
2025년 11월 04일
AI는 이제 우리의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문장을 요약하고, 질문에 답하며, 그림을 그리고,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AI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주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그 핵심은 정적 시스템(static system)과 동적 시스템(dynamic system)의 구분에서 출발한다.
멈춘 세계, 정적 시스템
정적 시스템이란 시간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구조를 가진 문제를 말한다. 대표적인 예가 바둑이다. 바둑은 19×19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진행되며, 외부 환경과 무관한 폐쇄된 게임이다. 알파고가 인간 프로기사들을 능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둑이라는 게임이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하거나 통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정적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조가 고정되어 있고 입력이 주어졌을 때 출력이 일정한 시스템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거나 계산하는 방식이 잘 통한다. 많은 AI의 성공 사례가 이러한 특성을 가진 정적 시스템에서 나왔다.
흐르고 상호작용하는 세계, 동적 시스템
그러나 현실의 문제는 바둑과는 다르다. 우리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과거의 이력이 미래에 영향을 주는 동적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정책은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고, 전쟁은 상대의 전략과 환경 변화에 따라 유동적이며, 기업 경영은 시장, 조직, 기술, 사람 사이의 복잡한 피드백 구조 속에 존재한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동적 시스템에서는 단순한 과거 데이터나 통계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중요한 변수들이 관측되지 않거나 아직 발생하지 않았고,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선형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동적 시스템은 그 자체로 예측 불가능성과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AI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LLM(Large Language Model)과 같은 AI는 대규모 텍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며, 주어진 문맥에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이런 AI는 자연어 질의에 응답하거나 글을 요약하고 번역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이미 존재하는 정보의 조합이나 설명, 응답에는 강력하다.
그러나 이런 모델의 한계는 분명하다. LLM은 세계의 구조를 실제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간에 따른 변화나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할 수 없으며, 관찰된 데이터 외의 보이지 않는 본질은 파악하지 못한다. 결국 이들은 정적 텍스트의 패턴을 예측하는 도구일 뿐이며, 현실처럼 유동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
시뮬레이션과 시스템 사고의 필요성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가 어떤 시스템적 특성을 가지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동적 시스템을 다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데이터 기반 학습을 넘어서는 접근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트윈 기반의 시뮬레이션이다.
시뮬레이션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가상으로 실험하게 해주고, 시스템 모델링은 변수 간의 구조적 관계를 수학적 혹은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시스템 사고(System Thinking)를 더하면, 피드백 루프, 시간 지연, 비선형 효과 등 현실 문제의 복잡성을 더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Big data + AI + Simulation, 즉 BAS 기반 접근은 학습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동적 시스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론이 된다.
지혜가 필요한 시대
정적 시스템에서는 AI가 인간을 앞설 수 있다. 그러나 동적 시스템에서는 인간의 직관, 경험, 통찰이 여전히 중요하다. LLM과 같은 AI는 유능한 도구지만, 그것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는 인간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기술 그 자체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기술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문제가 정적인가, 동적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학습인가,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인가? 이 도구는 어떤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는가? AI는 곁에 두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정적 시스템을 위한 AI가 아니라, 동적 현실을 위한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