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시험(試驗)에서 실험(實驗)으로
AI 시대, 최적화를 위한 정책과 기술의 전환
2025년 07월 21일
우리는 오랫동안 ‘시험’을 통해 문제를 풀고, 정답을 맞히는 방식에 익숙해져 왔다.
교육은 물론 정책 수립이나 기술 전략에서도 마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접근해 온 관행이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는 시험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 팬데믹, 에너지 전환, 국방 전략, AI 규제, 산업구조 재편과 같은 이슈들은 모두 정해진 문제조차 명확하지 않은 비정형적 문제다.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답도 계속 바뀐다. ‘정답’을 전제로 하는 방식으로는 이처럼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AI 시스템은 엄청난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를 기반으로 과거를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여러 위기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의 단절(disruption)’이다. 팬데믹, 지정학적 충돌, 기후 급변 등은 과거 데이터만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계학습 기반 AI는 데이터가 있는 곳에선 유용하지만, 데이터가 없는 새로운 문제에 대해선 오히려 잘못된 확신(false confidence)을 줄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예측을 넘어, 실험 기반의 탐색적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약 조건 속에서 최적의 해답(optimal solution)을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도구가 바로 가상 실험(Virtual Experimentation)이다.
가상 실험은 디지털트윈, 시뮬레이션, 인공지능(AI)을 결합해 현실을 디지털 세계에 재현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조합해 실험함으로써 최적의 전략을 찾아낸다. 시행착오가 어려운 정책이나 기술 문제일수록, 가상 실험은 실패 위험을 줄이면서도 효과적 대안을 찾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한 도시의 교통체계를 재편하거나, 국가의 에너지 공급망을 바꾸거나, AI 윤리 규제를 설계할 때 단일한 정답은 없다. 변수는 수백 가지에 달하고, 이해관계자는 얽히고설켜 있다. 이때 가상 실험은 대안을 비교·분석하고, 각 선택의 장기적 파급효과를 시뮬레이션하여 더 나은, 더 안전한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우리가 되짚어야 할 것은, 기술과 정책은 결코 따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은 실현 불가능한 선언에 그치고,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은 실험실을 벗어나 현실에 안착하지 못한다.
기술은 실현 수단이고, 정책은 방향이다. 정책이 미래를 제대로 설계하지 못하면 기술은 잘못된 문제를 ‘최적화’할 뿐이며, 반대로 정책이 아무리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도 기술이 따라가지 못하면 공허한 이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책결정자는 빠른 예측이 아닌, 실패를 감수하고도 유연하게 전략을 설계할 수 있는 실험적 사고가 필요하다. 기술 전문가에게는 단순한 모델 고도화보다 현실 연동과 시뮬레이션 기반 최적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시험은 정해진 답을 검증하지만, 실험은 아직 모르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시험은 과거를 기준으로 하지만, 실험은 미래를 준비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AI 시대에 기술과 정책이 함께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