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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R&D 혁신, 실험으로 검증하고 효과로 평가하자.

2025년 11월 04일

MOE 중심 전략과 가상실험 플랫폼, 그리고 소버린 AI의 결합

이재명 정부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단순히 예산 편성 절차를 다듬는 수준이 아니라, 과거의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인해 훼손된 과학기술 생태계를 복원하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보다 근본적인 체계 개편이다.

 

하지만 R&D 혁신은 회의실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실험실, 현장, 데이터 위에서 검증되고 효과를 통해 입증되어야 한다. R&D는 본질적으로 실험을 통해 가능성과 가치를 입증하고, 그 효과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이다. 지금까지의 R&D 시스템이 성과보다 형식에 치우쳐 있었다면, 이제는 ‘관리하기 위한 관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MOE(Measure of Effectiveness) 중심의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험 없는 R&D는 위험한 도박과도 같다. 특히 국가 전략 기술, 정책 기술, 대규모 융합 시스템처럼 복잡하고 파급력이 큰 분야는 현실에서 실험 자체가 쉽지 않다. 윤리적·재정적·물리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지털 기반의 가상실험(Virtual Experimentation)이 대안으로 주목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실험을 디지털 공간에서 반복 가능하게 수행함으로써, 정책이나 기술의 효과성과 위험 요소를 사전에 검증할 수 있다.

 

각 R&D 사업에 특화된 실험 환경을 따로 구축하되, 동시에 공통적으로 활용 가능한 국가 수준의 가상실험 플랫폼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실험하고 결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면, 예산은 줄고, 개발 기간은 단축되며, 품질은 올라가고, 리스크는 낮아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제 R&D의 평가 체계를 성과물 중심(MOP: Measure of Performance)에서 효과 중심(MOE: Measure of Effectiveness)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몇 건의 논문, 몇 개의 특허, 몇 명의 인력 양성이 성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 연구가 무엇을 바꾸었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연구자들이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성과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에 시간을 쓰게 됐고, 관리자는 실질적 평가보다 지표 정리에 몰두하게 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관리를 위한 관리’, ‘성과 없는 평가’, ‘책임은 있으나 권한은 없는 사업 구조’라는 악순환을 낳았다. 이제는 이런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MOE 중심으로 전환하면, 모든 연구와 투자가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하게 된다. 효과 중심의 평가는 형식보다 내용을 보게 만들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살리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방식의 R&D 관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사업을 위해 성과를 꾸며내는 구조는 끝내야 한다.

 

이러한 혁신은 국가AI센터와 소버린 AI 전략과도 깊게 연결된다. 국가AI센터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AI 모델과 시뮬레이션을 통합하여 BAS(Big data + AI + Simulation) 기반의 가상실험을 고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동시에 소버린 AI는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가 자율적이고 신뢰 가능한 AI 기반 실험 환경을 갖추는 데 핵심이 된다. 이 두 축이 결합되면 정책 설계와 기술 개발, 사회적 수용성까지 모두 아우르는 통합 실험 생태계가 가능해진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모든 R&D 과제의 성과 목표를 MOE 관점에서 재정의하고,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 변화와 사회적 파급력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AI센터가 주도하여 범정부 차원의 국가 가상실험 플랫폼을 구축하고, 우선순위 분야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해 실효성을 검증한 뒤 점진적으로 확산해야 한다.

 

셋째, 소버린 AI 전략과의 연계를 강화해 정책 설계와 평가 과정에서 AI가 조력자로 작동하게 하고, 국가 의사결정의 정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

 

실험은 과학의 기본일 뿐 아니라, 정책의 마지막 검증 수단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실험이 가능한 환경을 갖추고, 효과 중심의 R&D를 지원해야 한다. 관리를 위한 관리에 빠져 의미 없는 성과를 쌓기보다, 한 번의 실험으로 백 번의 낭비를 줄이고, 한 번의 검증으로 열 번의 실패를 예방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R&D의 본질은 혁신이다. 그 혁신은 실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실험은 더 이상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디지털 세계에서 지혜롭게 반복되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국가 R&D 전략의 방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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