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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컴퓨팅 파워를 넘어 시스템 파워로-21세기 AI 지정학과 새로운 주권의 본질

2025년 11월 04일

글로벌 AI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20세기의 패권이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에서 나왔다면, 21세기의 패권은 AI와 이를 작동시키는 ‘컴퓨팅 파워’에서 시작되고 있다. AI 개발을 위해 필요한 GPU, 데이터센터, 전력망 등의 인프라가 이제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순방은 그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에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을 대규모로 공급하고, AI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계약을 맺었다. 언론은 200조 원 규모의 무기·비행기 계약보다 ‘AI 협력’에 더 주목했다. 이는 마치 1974년 페트로달러 협정을 연상케 하는, 역사적 전환의 신호였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석유만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음을 자각했고,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AI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내 AI 훈련 외에는 매우 제한적인 접근만 허용하고 있으며, 사우디와 UAE는 중국산 칩과 데이터센터 유치를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제휴가 아니라,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의 형성이다.

 

하지만 이 현상을 우리는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AI 칩을 확보하고 데이터센터를 짓는 것이 곧 기술 주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팅 파워는 수단일 뿐, 진정한 경쟁력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역량’에서 비롯된다. 즉, 이제 필요한 것은 ‘컴퓨팅 파워’를 넘어서는 ‘시스템 파워’다.

 

문제는 컴퓨팅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AI 연산 능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연산 능력을 무엇에, 어떻게, 왜 쓰는가이다.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해법을 시뮬레이션하고, 그 효과를 비교해 선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사고와 체계적인 실험 플랫폼—이것이 바로 시스템 파워다.

 

AI의 연산 능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선 문제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는 최신 AI 칩을 확보하기도 힘들고, 데이터센터 설립은 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국내 최우수 인재들도 컴퓨팅 자원을 찾아 미국이나 중국으로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자국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AI를 활용해 이를 검증하고 해결하는 ‘가상 실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문제 해결을 위한 설계 능력, 시뮬레이션을 통한 판단 능력, 그리고 실행을 통한 학습 능력이 모이면, 그 국가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AI 주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소버린AI, 진정한 주권의 의미를 고민할 때

이재명 정부는 ‘소버린AI’를 국산 LLM(대규모 언어모델), 또는 모두를 위한 공공 AI로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AI 주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단순히 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단지 기술의 집합이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수집·가공하며, 시뮬레이션으로 해법을 비교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전 과정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외부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의 문제를 자국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 파워’의 핵심이며, 진정한 AI 주권이자 국가 역량이다.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지금까지 AI 경쟁은 기술력, 자본, 인재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적 사고와 구조화된 실행 능력이 국력을 결정짓는다. 우리는 단순히 AI 기술을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AI를 문제 해결 도구로 통합해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컴퓨팅 파워가 국가의 에너지라면, 시스템 파워는 국가의 ‘두뇌’다.

에너지를 갖춘 두뇌가 작동할 때, 비로소 진짜 지능적 국가가 된다. 이제 대한민국도 AI 칩 하나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새로운 틀, 시스템 중심 전략을 갖추어야 한다. 21세기의 국력은,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 자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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