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업자(業者)
2025년 11월 04일
“나는 업자를 만나지 않는다.”
이 말이 마치 청렴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사회다. 어딘지 모르게 그럴 듯하지만, 이 말에는 무언가 익숙한 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업자’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가 불순하고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과연 누구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전적으로 ‘업자(業者)’는 업(業)을 실제로 운영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최전선에는 늘 업자가 있다. 길을 내고, 건물을 짓고, 전기를 넣고, 시스템을 만들고, 서비스를 운영한다.
그들이 없다면 사회는 움직일 수 없다. 그들은 말 그대로 변화를 실현하는 실천가, 사회라는 유기체를 움직이는 Actuator(구동자)다.
그런데 왜 이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 자랑이 되고, 멀리하는 것이 청렴의 덕목처럼 인식되는가? 업자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이다.
계약이 실패하면 손해를 감수하고,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모든 책임을 짊어진다. 불확실성과 시행착오 속에서 실험하듯 일을 하며, 현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보고서가 아니라 시스템을, 계획이 아니라 결과를 만든다. 말이 아닌 손으로, 이론이 아닌 실행으로.
반면 공무원은 공익을 우선하는 자리다. 사익보다 공동체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고귀한 책임이 따른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즘 공무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건 민간에서 결정하시죠.”
“제가 결정하면 감사에 걸릴 수 있습니다.”
‘오해받지 않기 위한 방어선’이 어느새 ‘책임 회피의 장벽’이 되었다. 이해는 간다.
감사와 감시의 제도는 공정성을 위한 장치지만, 그로 인해 사람 간의 신뢰가 단절되고,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지 못한다면 결국 실행력 없는 계획만 남고 혁신은 멈춘다.
바로 여기서 DBSE(Digital twin Based System Engineering)의 필요성이 드러난다. 현실과 계획, 민간과 공공, 정책과 실행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
디지털트윈을 기반으로 모델링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하고, 실행 전에 결과를 예측하는 체계적인 접근이다. 이는 누구의 감이나 직관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설계와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 더해 MOE(Measure of Effectiveness), 즉 ‘얼마나 효과적이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사람의 감정이나 정치적 해석이 아니라, 명확한 성과 지표로 공공성과 혁신의 균형을 판단해야 한다.
그 기준이 있어야 업자도, 공무원도 각자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이 기준이 없으면 사람은 사람을 피한다. 업자는 불신의 눈초리를 받게 되고, 공무원은 감사가 두려워 협업을 회피하게 된다. 결국 실행은 지연되고, 변화는 멈춘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실천 없이 청렴하다는 것이 과연 진짜 청렴인가?
청렴은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나는 업자를 존중한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사회를 움직이는 실천가들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역시 그 실천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파트너다.
둘 사이의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그 해답이 바로 DBSE이고, 신뢰의 기준이 되는 수단이 MOE다. 우리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은 “만나지 않음”이 아니라, “만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래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