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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Concept와 개념

2025년 11월 04일

요즘은 일상 대화에서도 ‘개념’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개념이 있다” “개념 없다” “너무 개념적이다”라는 말까지.

 

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 말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더 나아가, 영어의 ‘Concept’과 한국어의 ‘개념’은 과연 같은 말일까?

 

그리고, ‘개념 없이’ 무언가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까?

 

같은 단어, 다른 뿌리

 

많은 이들이 ‘개념’이 영어 ‘concept’에서 유래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개념(槪念)’은 오랜 역사 속에서 중국과 동아시아 철학에서 사용되어 온 한자어다. ‘槪’는 ‘대강’ ‘전체적인 틀’ ‘念’은 ‘생각’을 뜻한다.

 

즉 ‘개념’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요약한 생각이다. 반면, concept는 라틴어 conceptum에서 유래한다.

 

‘잡다(concipere)’라는 뜻에서 발전된 말로, 사고의 추상적 단위를 뜻하는 서구 철학의 핵심 어휘다.

 

오늘날 이 둘은 의미상 유사해졌지만, 문화적 배경도, 철학적 뿌리도 서로 다르다.

 

개념이란 말을 우리는 어떻게 쓰고 있나? 영어권에서 concept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창의적 사고, 이론적 틀, 전략적 구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예를 들어 ‘conceptual design’이나 ‘concept art’는 구체적 실현 이전의 고차원적 구상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어에서의 ‘개념’은 상황이 다르다. ‘개념 없다’는 말은 예의 없거나 상식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개념적이다’라는 표현은 현실성이 없다는 비판으로도 쓰인다. 심지어 어떤 이에게는 ‘개념’이 뜬구름 같은 추상성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감정과 판단이 얽혀 있는 셈이다.

 

개념 없이도 실현은 가능한가?

실행 자체는 가능하다. 누군가는 경험과 직관, 감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실현은 단지 만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 결과는 목적과 부합하는가?

사용자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시간이 지나도 지속 가능한가?

이 모든 질문에 답하려면 반드시 기준이 필요하다. 바로 개념이다. 개념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실현의 방향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유’이자 ‘설계도’다.

 

복잡할수록 중요한 ‘운영개념’

특히 복잡한 시스템일수록, 개념은 더욱 중요해진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바로 운영개념(Concept of Operations, ConOps)이다.

운영개념은 단순한 기술 명세가 아니다.

이 시스템이 왜 필요한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할지,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구상이다.

운영개념 없이 설계된 시스템은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현장에서 쓰이지 않고, 운용자가 이해하지 못하며, 결국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실현은 개념의 검증 과정이다

개념은 이상이고, 실현은 그 이상이 현실에서 작동하는지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개념 없이 실현에 나서면, 목적을 잃기 쉽고 실현 후에도 개념이 없으면, 평가조차 어렵다

 

좋은 개념은 실현의 나침반이고, 운영개념은 실행의 방향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게 해준다.

 

나는 지금 어떤 개념 위에 서 있는가?

무언가를 설계하고 실행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한 번쯤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개념 위에 서 있는가?”

“이 일이 왜 필요한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

“개념 없이 실현만을 쫓고 있지는 않은가?”

 

마무리하며

개념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개념 없이 실행할 수는 있어도, 개념 없이 성공할 수는 없다.

특히 오늘날처럼 시스템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기술이 목적을 대신해버리기 쉬운 시대일수록 운영개념은 실현의 생명선이 된다.

개념이 명확하면 실현은 강해지고, 개념이 흐릿하면 실현은 흔들린다. 지금 우리가 만드는 그 시스템은, 어떤 개념 위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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