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외삽(外揷)과 소버린 AI
2025년 11월 04일
인공지능이 어느새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왔다. 이제 AI는 문장을 요약하고,
그림을 그리며, 질문에 답하고, 심지어 코딩도 한다. 놀라운 성과들이 연이어 이어지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질문을 던진다. “AI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질문보다 먼저 던져야 할 것이 있다. 바로, “AI는 과거에 없던 상황, 처음 마주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단지 성능이나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지능’이라는 본질적인 개념, 그리고 미래 사회의 주권적 기술 역량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AI는 어디까지 이해하는가?
현재 대부분의 AI, 특히 GPT 같은 LLM(Large Language Model)은 과거에 존재했던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해 미래의 비슷한 상황을 예측한다. 우리는 이를 보간(Interpolation, 補間)이라고 부른다.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의 예측은 AI의 주특기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화, 처음 겪는 사건, 과거에 없던 조합과 조건들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처음의 문제’를 만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외삽(Extrapolation, 外揷) 능력이다.
외삽이란, 주어진 데이터의 경계를 넘어서는 추론이다. 즉, 본 적 없는 문제를 상상하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사고는 대부분 이 외삽에 의존한다. 위기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행동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현재의 AI는 여기에 매우 약하다.
데이터 기반 AI의 한계
기계학습 기반 AI는 본질적으로 과거 데이터에 갇힌 시스템이다. 관찰 가능한 현상에서 패턴을 학습하므로, 관찰되지 않은 변수, 보이지 않는 구조, 처음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무기력하다.
바둑처럼 공간과 규칙이 정해진 정적 시스템에서는 AI가 인간을 이겼다. 그러나 현실은 바둑이 아니다. 대부분의 현실 문제는 시간에 따라 변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사람의 판단과 감정,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동적 시스템이다.
LLM은 이 동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문장은 생성할 수 있어도, 그것이 맥락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까지 깊이 있게 사고하지 못한다. ‘타당한 이유’보다는 ‘그럴싸한 말’에 더 가까운 답을 내놓는 이유다.
소버린 AI, 왜 필요한가?
이쯤에서 ‘소버린 AI(Sovereign AI)’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소버린 AI는 단지 국산화된 인공지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국의 문제를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능 인프라를 뜻한다.
글로벌 모델에만 의존할 경우, 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는 질문을 던지기도 어렵고, 미묘한 문화·제도·언어적 맥락까지 반영하기도 어렵다. 나아가, 위기 대응이나 국가 전략 수립에 있어 ‘우리만의 사고력’을 갖춘 AI 없이는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다.
소버린 AI가 가야 할 길은 외삽 가능한 AI의 길이다.
본 적 없는 문제 앞에서 멈추지 않고, 구조와 맥락을 읽고, 대안을 상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능.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고하는 도구, 실험하는 도구, 지혜를 증강시키는 파트너여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기술 – 시뮬레이션과 시스템 사고
우리가 이를 구현하려면, 기계학습만으로는 부족하다. 데이터로는 보지 못한 것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시뮬레이션, 시스템 모델링, 시스템 사고라는 고전적인 지혜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시뮬레이션은 실제로 일어나기 전 상황을 가상으로 실험해보는 것이다. 모델링은 시스템의 구조, 변수 간 관계, 피드백 루프를 표현한다.
시스템 사고는 정적인 정보보다 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문제를 이해하려는 방식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예측을 넘어선다. “어떻게 될까?”에서 멈추지 않고, “어떻게 해야 좋을까?”, “무엇이 본질적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외삽의 시작점이다.
맺으며 – AI는 사고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AI의 유용함을 넘어서, AI의 한계와 역할, 그리고 책임과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외삽할 수 없는 AI는 결국, 훈련된 과거 안에만 갇힌 반복기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할 AI는 미지의 문제를 마주했을 때, 인간의 판단을 도와주고, 더 나은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AI여야 한다.
소버린 AI의 핵심은 기술의 독립성만이 아니다.
그것은 상황을 이해하고, 문맥을 읽고, 예외를 감지하고, 처음의 문제를 풀어가는 역량, 다시 말해 외삽 가능한 사고력을 갖춘 AI를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AI를 통제하고, 함께 성장하며, 미래의 위기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외삽은 단지 기술이 아니다. 주권을 위한 지능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