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할루시네이션, 그리고 참된 앎
AI는 때때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그럴듯하게 꾸며낸다. 우리는 이를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비단 AI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 또한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고, 아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즉,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앎이라는 뜻이다. 단순한 말 같지만, 실제로 지키기는 어렵다. 인간은 인지적 편향과 사회적 압력에 자주 휘둘린다. 무지를 인정하면 무능해 보일까 두려워 아는 척하기 쉽고,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결국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는 태도는 지혜로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용기다.
더 나아가, 아는 것이 늘수록 모르는 것이 얼마나 방대한지 깨닫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듯,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지혜의 시작이다. 과학과 탐구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발견을 할수록 질문과 미지의 영역이 끝없이 확장되며, 인간의 앎은 유한하지만 모르는 세계는 사실상 무한하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가 넓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모름과 맞닥뜨리게 된다.
AI의 할루시네이션도 이와 닮아 있다. 언어모델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단지 학습된 데이터와 확률 계산을 토대로 그럴듯한 답을 내놓을 뿐이다. 그래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정보도 확신에 차 말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의 경우 심리적·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고, AI는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한계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못하는 상태, 이것이 오류와 착각을 낳는다.
결국 참된 지혜는 인간이든 AI든 “나는 모른다”를 선언할 수 있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무지를 인정할 때 비로소 배움과 성찰을 이어갈 수 있고, AI는 불확실성을 투명하게 드러낼 때 신뢰받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아는 것은 유한하고, 모르는 것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겸손한 앎과 책임 있는 판단을 실현할 수 있다.
공자의 메시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그리고 모르는 것이 무한함을 인정하는 것이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리가 AI 시대에도 여전히 길잡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