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AI의 개념과 현실
이상을 넘어, 공학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AI에 대한 논의가 넘쳐난다. GPU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필요하다, 인재가 부족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들이 반복될수록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은 사라진다. 우리가 말하는 AI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개념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이 간극을 인식하지 못하면 방향은 틀어지고, 정책과 기술은 어긋나며, 그 결과 시행착오와 실패는 반복된다. 실패는 피할 수 없지만,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최근 제시되는 “AI 3강, 피지컬 AI 1강”이라는 목표 역시 마찬가지다. 의지와 구호로서의 의미는 분명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뜻인지가 구체화되지 않으면 또 하나의 추상적 선언에 머물 위험이 있다. 목표는 선언으로 충분하지만, 실현은 반드시 설계와 실행을 요구한다.
AI라는 말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오늘날 AI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넓게 쓰인다. 인식형 AI, 생성형 AI, 에이전트 AI, 피지컬 AI, 나아가 AGI와 ASI까지 모두 AI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여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목적도, 구현 방식도, 성숙도도 전혀 다르다.
인식형 AI는 패턴을 분류하고, 생성형 AI는 학습된 분포에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에이전트 AI는 목표를 기준으로 행동을 조합하고, 피지컬 AI는 물리 세계의 제약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AGI와 ASI는 아직 개념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은 채 AI 3강을 말하면, 무엇에 강해지겠다는 것인지조차 모호해진다.
특히 피지컬 AI는 소프트웨어 경쟁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물리 법칙, 안전성, 신뢰성, 검증 가능성이라는 현실 제약이 핵심이다. 이 차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정책은 추상화되고, 실행 단계에서는 어김없이 벽에 부딪힌다.
GPU와 데이터는 조건이지 실력이 아니다
GPU가 부족하다,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말은 현실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조건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기술은 멈춘다.
진짜 실력은 조건이 완벽할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GPU가 부족해도, 데이터가 불완전해도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AI 3강을 말하면서도 GPU와 데이터 확보만을 행동계획의 중심에 둔다면, 이는 수단을 목표로 착각하는 것이다. 자원은 중요하지만, 자원만으로 경쟁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현실에는 언제나 제약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그 제약을 전제로 사고하고 설계할 수 있는가이다.
정책과 기술이 어긋나는 이유
정책은 종종 개념을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기술은 현실을 기준으로 작동한다. 이 둘이 만나지 못하면 부조화가 생긴다. 정책 문서에는 그럴듯한 AI와 야심 찬 목표가 등장하지만, 현장에서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AI 3강, 피지컬 AI 1강을 실현하려면 선언이 아니라 행동계획이 필요하다. 그 행동계획은 예산 배분이나 조직 신설 이전에, 어떤 문제를 어떻게 실험하고 검증할 것인지까지 내려와야 한다. 문제 정의, 가설 설정, 실험 설계, 검증과 축적의 과정이 정책 언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기술은 정책을 따라갈 수 없다.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 그리고 DBSE
이 지점에서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은 구호를 행동으로 바꾸는 현실적인 해법이 된다. 현실 시스템을 그대로 실험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상공간에서 먼저 실패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DBSE, 즉 Digital twin-Based Systems Engineering은 단순한 시뮬레이션 기법이 아니다. 이는 복잡한 시스템을 모델링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가상실험으로 검증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현실의 의사결정을 돕는 공학적 접근이다.
데이터가 부족하면 가상실험으로 생성하고, 실험이 위험하면 가상에서 먼저 해본다. 피지컬 AI 역시 현실 투입 이전에 수많은 실패를 가상에서 겪어야 한다. 이것은 GPU나 데이터 부족을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제약을 전제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행동계획이 작동하려면 바로 이런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
실패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무의미해서는 안 된다
실패는 불가피하다. 기술 발전의 과정에서 실패 없는 도약은 없다. 문제는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가 관리되지 않고 축적되지 않는 데 있다.
가상실험과 DBSE의 가치는 실패를 학습 자산으로 바꾸는 데 있다. 실패를 싸게 만들고, 안전하게 만들고, 다시 쓸 수 있게 만든다. 이는 도전을 장려하면서도 무모함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피지컬 AI 1강을 말하려면, 먼저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부터 갖춰야 한다.
개념을 줄이고, 행동을 늘려야 한다
AI의 미래를 말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AI가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실험하고, 어떤 실패를 허용하며, 그 결과를 어떻게 축적할 것인지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AI 3강, 피지컬 AI 1강은 선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행동계획이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AI는 마법이 아니다. 공학(Engineering)이다. 그리고 공학은 언제나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설계로부터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