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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피지컬 AI 패권 전쟁'을 읽고

화면 속 지능을 넘어, 현실을 설계하는 AI의 전쟁

AI 담론의 사각지대를 겨냥한 책

 

요즘 AI를 둘러싼 담론은 눈부시다. 챗GPT, 거대 언어 모델, 생성형 AI의 성능 경쟁이 서점과 미디어를 가득 채운다. 그러나 박종성의 『피지컬 AI 패권 전쟁』은 이 화려한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을 던진다.

 

AI는 언제, 어떻게 화면 밖 현실을 직접 움직이게 되는가. 그리고 그 순간, 국가 경쟁력은 어떻게 재편되는가.

 

이 책은 말 잘하는 AI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AI가 패권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AI 경쟁의 본질은 ‘지능’이 아니라 ‘현실성’이라는 문제의식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피지컬 AI는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피지컬 AI는 특정 로봇이나 제품이 아니다. 센서-제어-판단-행동-학습이 하나의 루프로 연결된 현실 시스템 전체를 뜻한다. 자율주행차, 드론, 산업용 로봇, 스마트 팩토리, 무인 전투체계가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이 영역에서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알고리즘 하나가 아니다. 하드웨어, 제조 역량, 에너지, 운영 데이터,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실험 구조가 결합된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결과다.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듯, 피지컬 AI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중국은 왜 ‘몸을 가진 AI’를 국가 전략으로 삼았는가

 

책의 상당 부분은 중국의 AI 전략을 해부하는 데 할애된다. 저자는 중국의 접근을 AI의 몸체 구축 → 두뇌 설계 → 영혼과 육체의 결합(具身智能) 이라는 3단계 구조로 설명한다. 이는 개별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설계된 실행 청사진이다.

 

중국은 알파고 사건을 단순한 기술 뉴스로 소비하지 않았다. 이를 ‘관리된 스푸트니크 모멘트’로 활용해 국가적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대규모 투자와 산업 정렬을 이끌어냈다. DJI, 바이두, 유비테크 같은 기업들은 이 전략을 실행하는 실질적 주체로 등장한다. 중국을 ‘혁신 조립 라인을 가진 국가’로 묘사한 저자의 시선은, 피지컬 AI 경쟁이 이미 체제 경쟁의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알파고 이후, 경험은 언제 무력해지는가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장면은 알파고 이후 커제 9단의 고백이다.

 

“인류가 지난 수천 년간 개발하고 검증한 여러 전술을 구사했지만, 컴퓨터는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 발언의 핵심은 인간의 패배가 아니다. 경험과 직관은 원리 수준에서 재구성되지 않으면 무력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를 단순히 학습한 것이 아니라, 바둑이라는 시스템을 모델링하고 가상 공간에서 탐색했다. 승부를 가른 것은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이해였다.

 

모델과 시뮬레이션이라는 전제

 

『피지컬 AI 패권 전쟁』이 일관되게 드러내는 전제는 분명하다. 현실 세계는 현상 데이터만으로 다룰 수 없다. 비선형적이고 예외가 많으며,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인 영역에서 피지컬 AI가 작동하려면, 현실을 이해 가능한 구조로 만들고 가상에서 먼저 검증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피지컬 AI는 자연스럽게 디지털트윈 기반 시스템 엔지니어링(DBSE)으로 이어진다. 목적과 제약, 상호작용을 모델로 정의하지 않고서는 피지컬 AI는 확장될 수 없다. 이는 책 전반에 깔린 핵심 문제의식이다.

 

이 책이 제시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필자는 알파고 이후의 교훈과 최근 중국 로봇 사례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무대 위 로봇이 보여준 현재진행형 현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중국 가수의 공연 무대에서 사람과 함께 군무와 공중 돌기를 선보인 로봇 영상을 공유하며 “인상 깊다”고 평가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해당 로봇은 중국 유니트리 로보틱스의 G1으로, 사람과 충돌하지 않도록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계산하며 고난도 동작을 수행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다. 정밀 제어, 실시간 인식, 집단 동작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통합 능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가 로봇 산업에 장기 투자를 이어가고, 유니트리가 글로벌 협력과 상장을 추진하는 흐름 역시 책에서 설명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식의 많고 적음을 말하지 않는다. 무엇이 상수이고 무엇이 미지수인지 구분하는 태도를 말한다.

 

피지컬 AI에서 이 태도는 결정적이다. 현상으로 관측된 데이터를 아무리 많이 모아도,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지 못하면 시스템은 오판을 강화한다. 알파고가 인간의 직관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도, 인간이 당연하게 여겼던 전제들을 모델 수준에서 다시 정의했기 때문이다.

 

 

격물치지에서 디지털트윈까지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사물을 끝까지 탐구해 참된 앎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작동 원리와 구조를 밝히는 일이다.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로 이어지는 단계는 개인의 앎이 조직과 국가로 확장되는 질서를 보여준다.

 

이 고전적 사유는 오늘날 DBSE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현실 시스템을 직접 건드리기 전에 모델로 정의하고, 가상에서 실험하며, 실패를 통제하는 구조는 현대판 격물치지라 할 수 있다. 피지컬 AI는 기술 이전에 사유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변하는 유행과 변하지 않는 원리

 

기술은 빠르게 변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과 시스템의 원리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피지컬 AI 패권 전쟁』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수시로 변하는 유행을 쫓기보다, 변하지 않는 구조와 원리를 붙들어야 한다.

 

관계를 정렬하지 못한 조직은 기술을 가져도 혼란을 낳고, 구조를 세우지 못한 국가는 첨단 기술을 보유하고도 방향을 잃는다.

 

화면 밖에서 이미 시작된 전쟁

 

『피지컬 AI 패권 전쟁』은 기술 낙관론도, 단순한 위기론도 아니다. 이 책은 AI 경쟁의 무대를 다시 정의한다. 승부는 화면 안이 아니라, 현실 세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보이는 현상을 따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원리를 설계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선택의 시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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