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피지컬 AI, 중국에서 배우자
알파고·ChatGPT 쇼크 이후, 한국이 놓치고 있는 구조와 태도
커제의 패배 이후, 중국은 와신상담했고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알파고 쇼크와 ChatGPT 쇼크를 우리는 분명히 경험했다. 충격은 컸고, 반응도 빨랐다. 그러나 질문은 깊지 않았다. 놀라움과 감탄은 넘쳤지만, 그것이 사고의 전제를 다시 묻는 집단적 각성으로 이어졌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세돌과 커제의 대비는 단순한 개인사의 차이가 아니다. 이세돌은 은퇴했고, 커제는 각성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이 아니라, 그 장면을 국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다.
“인류가 수천 년간 개발하고 검증한 여러 전술을 구사했지만, 컴퓨터는 그것이 완전히 틀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 장면을 중국은 한 기사의 패배로 보지 않았다. 중국은 이것을 사고 체계의 패배로 받아들였다. 무엇이 틀렸는가, 왜 틀렸는가, 그렇다면 어떤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가. 그 순간 중국은 성능 경쟁이 아니라, 구조 경쟁으로 방향을 틀었다.
알파고는 인간을 이긴 것이 아니다. 인간이 당연하다고 믿어온 경험 기반 사고의 한계를 드러냈을 뿐이다. 그 순간 필요한 것은 더 센 AI가 아니라, 사고와 판단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었다.
중국은 그 패배를 잊지 않았다. 오히려 그 위에 올라가 잠을 청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이었다.
현상에 머무른 한국, 구조를 선택한 중국
우리는 여전히 ‘보이는 것’에 강하다. 로봇의 동작 영상, 화려한 데모, 성능 수치와 벤치마크. 하지만 현실을 움직이는 AI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피지컬 AI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이고, 데이터가 아니라 모델이며, 알고리즘이 아니라 구조다.
현상을 아무리 빨리 따라가도 구조를 설계하지 못하면 결국 추격자에 머문다. AI가 유행으로 소비되는 순간, 경쟁은 이미 끝난다.
중국은 이 점을 일찍 이해했다. 남들이 LLM에 집중할 때, 중국은 상대적으로 덜 화려하지만 훨씬 본질적인 영역에 집중했다. 현실을 통제하고 반복 실험할 수 있는 환경, 즉 살아 있는 실험실이다.
미국의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통제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중국이 일부 피지컬 AI 영역에서 앞서 나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최신 칩 때문이 아니다. 현실을 실험하고, 실패를 허용하며, 모델과 시스템을 함께 진화시키는 구조를 국가 차원에서 집요하게 운영했기 때문이다.
중국에게 AI는 연구 주제가 아니라 국가 운영 기술이다. 그래서 데이터는 흩어지지 않고, 모델은 축적되며, 실험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따라가기 급급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는 제조강국이고 정보화강국이다. 현장을 알고, 시스템을 만들고, 자동화와 통합을 수십 년간 몸으로 해왔다.
여기에 BAS(Big Data + AI + Simulation) 기술과 모사·관제·모의를 넘어 연합·자율 수준까지 지원하는 WAiSER 기반 디지털트윈 플랫폼까지 갖추고 있다면, 기술 자체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주도하지 못하는가. 혹시 우리는 질문하기보다, 남들이 만든 답을 조금 더 잘 구현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는가. 구조를 새로 설계하기보다, 이미 정의된 문제를 더 빠르게 푸는 데 만족하지 않았는가.
AI 전문가와 정책결정권자의 불편한 진실
우리나라 AI 전문가들은 아는 것이 많다. 논문을 읽고, 트렌드를 알고, 해외에서 무엇이 뜨는지도 잘 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면으로 묻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늘 남들이 이미 달리고 있는 트랙에서 조금 더 빨리 달리려 한다. 공백을 정의하기보다, 비교 가능한 성과와 지표에 집중한다.
정책결정권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빠른 성과가 보이고, 해외에서 검증됐으며, 책임이 분산되는 선택이 합리적이고 안전해 보인다. 그래서 팔란티어, 엔비디아 같은 플랫폼을 도입하는 결정은 언제나 손쉬운 선택이 된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델과 데이터를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AI를 어떻게 국가 전략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핵심 판단과 의사결정을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면서, 어떻게 주권과 안보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왜 한국디지털트윈연구소는 지원받지 못하는가
중국은 디지털트윈과 가상실험을 명확한 전략 자산으로 인식한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이를 연구 과제나 실증 사업 수준에서 다룬다.
한국디지털트윈연구소가 준비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너무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모델을 중심에 두고, 실패를 전제로 하며, 구조를 다시 묻는 접근은 기존 정책 프레임 안에서 불편하다.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실험은 단기 성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모델을 통해 판단하며, 시스템으로 실행하는 능력을 축적한다.
이것은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어떻게 학습하는가에 대한 문제, 즉 국가 운영 철학의 문제다.
피지컬 AI 시대, 다시 와신상담할 수 있는가
중국은 커제의 패배 이후 와신상담했다. 굴욕을 덮지 않았고, 성과로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남겼고, 구조를 바꿨으며,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은 피지컬 AI를 유행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축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파고와 ChatGPT의 패배를 무엇으로 받아들였는가.
각성의 계기로 삼았는가, 아니면 따라잡아야 할 유행으로 소비했는가.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력은 성능이 아니라 사고 체계에서 갈린다. 중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패배를 대하는 태도와 구조를 설계하는 집요함이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 아니라, 다시 와신상담할 수 있느냐의 시간이다. 또 한 번의 쇼크를 기다릴 여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