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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월드모델에 대한 이해

목적·개념·추상화, 그리고 실행 가능한 세계

최근 AI 분야에서 ‘월드모델(World Model)’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엔비디아도 이야기하고, 얀 르쿤도 이야기한다. 피지컬 AI, 에이전트 AI, AGI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됐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자주 빠진다.

 

월드모델이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어떻게 만들고, 무엇을 위해 쓰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월드모델을 말하는 것은, 목적 없는 모델링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델은 현실이 아니라 ‘의도된 세계’다

 

모델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복사본도 아니다. 모델은 언제나 목적을 전제로 한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 어떤 판단을 돕고 싶은지, 어떤 행동을 선택하기 위한 것인지가 먼저 정해진다.

 

그 목적을 중심으로 개념이 정의되고, 복잡한 현실은 추상화된다. 이때 모든 것을 담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을 버린다. 이 선택과 배제의 결과가 바로 모델이다.

 

그래서 좋은 모델은 현실을 많이 담은 모델이 아니라, 목적에 꼭 필요한 것만 담은 모델이다. 월드모델 역시 ‘세상 전체’가 아니라, 의사결정에 필요한 세계를 정의한 모델이다.

 

 

세계는 하나의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실 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어떤 것은 연속적으로 변하고, 어떤 것은 이산적으로, 또 확률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들은 항상 섞여 있다.

 

자연환경은 대표적인 연속계다. 물리 법칙, 에너지 흐름, 운동과 같은 현상은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화한다. 여기는 미분방정식, 상태공간모델, 물리 기반 시뮬레이션이 어울린다. 피지컬 AI에서 이 영역을 제대로 다루지 않으면 현실과의 괴리는 필연적이다.

 

사람(People)은 전혀 다른 세계다. 사람의 의사결정은 이산적이고, 맥락 의존적이며, 본질적으로 스토캐스틱하다. 같은 조건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고, 감정과 경험, 관계와 제도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사람을 물리 법칙처럼 다루는 순간, 모델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사람이 만든 제품(Products)와 프로세스들(Processes)는 또 하나의 층위다. 제품은 물리적 실체이면서 동시에 기능과 구조, 인터페이스라는 개념적 대상이다. 프로세스는 순서, 규칙, 이벤트, 병목으로 구성된 이산 시스템이다. 제조, 물류, 행정, 작전, 서비스는 모두 여기에 속한다.

 

중요한 점은 이 세 가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연환경 위에서 사람이 행동하고, 그 결과로 제품과 프로세스가 만들어지며, 다시 그것들이 자연과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현실 세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브리드 세계(Hybrid World)다.

 

그래서 모델링 방법은 하나일 수 없다

 

세계가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데, 모델링 방법이 하나일 수는 없다. 연속 모델, 이산 모델, 확률 모델, 규칙 기반 모델이 목적에 따라 조합되어야 한다. 월드모델이란 특정 알고리즘이나 네트워크 구조가 아니라, 이질적인 세계를 목적에 맞게 연결한 구조다.

 

이 구분을 무시하면 문제가 생긴다. 자연을 데이터로만 다루면 물리가 사라지고, 사람을 통계로만 다루면 판단이 사라지며, 프로세스를 학습 결과로만 다루면 구조와 책임이 사라진다. 모델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 의사결정에는 쓸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모델이란 무엇인가

 

모델은 현실을 축소한 그림이 아니다. 모델은 목적을 위해 정의된 세계의 개념적 구조다.

 

무엇을 세계 안에 포함시킬지, 무엇을 외부 조건으로 둘지, 무엇은 무시할지를 정하는 것이 모델링이다. 이 경계 설정이 모델의 수준과 한계를 결정한다. 월드모델이란 바로 이 경계를 명확히 설정한 세계다.

 

시뮬레이션은 모델을 실행하는 행위다

 

시뮬레이션은 단순히 모델을 “돌려보는 것”이 아니다. 시뮬레이션은 모델이 정의한 세계를 시간 위에서 실행하는 것이다.

 

원인을 주면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어떤 선택이 어떤 변화를 낳는지를 가상 세계에서 실험한다. 현실에서 하기 어렵거나 위험하거나 비용이 큰 실험을, 실패 비용이 낮은 공간에서 먼저 해보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시뮬레이션은 모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데이터만으로는 시뮬레이션이 되지 않는다. 관계와 규칙, 구조가 정의된 모델이 있어야만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모델이 없으면 시뮬레이션은 의미 없는 계산이 되고, 시뮬레이션이 없으면 모델은 정적인 개념에 머문다.

 

 

얀 르쿤과 엔비디아의 월드모델

 

얀 르쿤이 말하는 월드모델은 인지적 관점에 가깝다. 관측과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내부 표현, 즉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하고 그 안에서 행동을 계획할 수 있는 구조다. 학습 중심의 접근이다.

 

엔비디아가 말하는 월드모델은 실행 중심이다. 물리 법칙과 기하, 동역학을 포함한 가상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피지컬 AI를 학습·검증·운영하려는 접근이다.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이 핵심에 있다. 둘은 다르지만 충돌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느 쪽이든 목적과 모델 정의 없이 흉내만 낼 때다.

 

모델링 시뮬레이션 없는 월드모델의 한계

 

요즘 비전·언어·행동(VLA) 모델로 피지컬 AI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반응형 행동 생성에 머문다. 입력에 대해 그럴듯한 출력을 내는 것과,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피지컬 AI가 다루는 세계는 연속적이고, 동적이며, 되돌릴 수 없다. 여기에 모델링과 시뮬레이션이 없다는 것은, 생각 없이 행동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월드모델의 본질은 정의하는 능력이다

 

월드모델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다. 무엇을 세계로 볼 것인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어떤 수준에서 추상화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능력이다.

 

모델은 목적에서 출발하고, 개념으로 구조화되며,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행된다. 이 과정을 건너뛴 월드모델 논의는 유행어에 그친다.

 

AI가 답변 도구를 넘어 지혜의 도구가 되려면, 먼저 우리가 다루려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부터 제대로 정의해야 한다.

 

아는 것은 유한하고 모르는 것은 무한하다. 우리가 아는 것만으로 모델을 만드는 순간 모델은 오만해지고 판단은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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