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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스 칼럼

AI시대 인과응보

상관의 시대에서, 인과와 책임을 다시 세우다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이어진다는 뜻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은 모든 일이 결국 바른 이치로 돌아간다는 믿음이다. 이 두 말은 오랫동안 개인의 윤리와 사회의 정의를 지탱해 온 사고의 기둥이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나고, 잘못된 선택에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른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AI가 판단과 의사결정의 중심으로 들어온 지금, 이 오래된 말들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 결과는 빠르게 생산되지만, 그 결과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판단은 시스템이 내리는데, 책임질 주체는 흐려진다. AI 시대에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은 여전히 성립하는가, 아니면 이미 붕괴된 개념인가.

 

원인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은 시대

 

오늘날 AI는 빅데이터를 기계학습시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일반적인 AI가 다루는 것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다. 어떤 조건 뒤에 어떤 결과가 자주 나타났는지는 알려주지만, 왜 그런 결과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AI의 답변은 그럴듯하다. 과거 데이터와 잘 맞고, 통계적으로도 틀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판단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곧바로 막힌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는 결과는 인과응보가 아니라, 단지 확률의 산물일 뿐이다.

 

 

인과응보는 믿음이 아니라 구조다

 

인과응보는 흔히 도덕적 경고나 종교적 교리로 소비되지만, 그 핵심은 구조에 있다. 원인과 결과가 대응되려면 그 사이의 연결 고리가 분명해야 한다.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어떤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과로 이어졌는지가 기록되고 추적 가능해야 한다.

 

이 구조가 없으면 인과응보는 설명력을 잃는다. 결과만 남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반대로 판단의 기준과 흐름이 처음부터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면, 인과응보는 감정이나 믿음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원리가 된다. 문제는 AI 시대에 이 구조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필귀정은 자동으로 오지 않는다

 

사필귀정은 흔히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로 이해된다. 하지만 복잡한 기술 시스템과 조직 사회에서 시간은 정의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책임을 희석시킨다. 의사결정은 여러 단계로 나뉘고, 판단은 시스템에 의해 내려지며, 책임은 개인도 조직도 아닌 어딘가로 흩어진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의가 실현되기보다 기록이 남은 쪽이 이긴다. 무엇이 문제였는지보다 무엇이 남아 있었는지가 결과를 결정한다. 결국 사필귀정은 기다림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어떻게 판단과 책임을 남기도록 설계했는가의 문제다.

 

 

BAS: 인과를 전제로 다시 실험하다

 

이 지점에서 BAS, 즉 Big Data·AI·Simulation의 결합이 의미를 갖는다. BAS는 상관관계를 찾는 기술 묶음이 아니다. 그 본질은 인과를 전제로 한 모델링과 검증에 있다.

 

BAS에서는 먼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원리와 인과를 모델에 반영한다. 물리 법칙, 제약 조건, 시스템 구조, 역할과 관계처럼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은 명시적으로 모델링된다. 그리고 그 모델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 즉 무엇이 원인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빅데이터를 기계학습시켜 관계와 패턴을 찾아낸다.

 

이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만약 이 조건을 바꾸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반복적으로 실험한다. 이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상관관계를 인과의 후보로 끌어올려 검증하는 과정이다. 사필귀정은 이렇게 가상실험을 통해 비로소 앞당겨진다.

 

DBSE: 책임을 남기는 구조

 

그러나 인과를 밝혀냈다고 해서 사필귀정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누가, 언제, 어떤 역할과 책임을 가지고 판단했는지가 구조로 남아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DBSE, 즉 Digital Twin-Based Systems Engineering이다.

 

DBSE는 디지털 트윈을 단순한 시각화 도구로 쓰지 않는다. 현실 시스템과 대응되는 디지털 트윈 안에 의사결정의 흐름과 판단의 근거, 역할과 책임의 배치를 함께 남긴다. 개인의 실수나 감정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차원의 판단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구조가 있을 때 결과는 다시 원인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책임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AI시대 사필귀정의 조건

 

AI 시대의 사필귀정은 더 이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섭리가 아니다. 정의로 귀결될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BAS가 없다면 우리는 결과를 보며 추정만 할 뿐이고, DBSE가 없다면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거나 공중으로 흩어진다.

 

AI가 판단을 보조하거나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판단이 내려지는 구조와 책임이 귀속되는 틀을 더욱 명확히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남아도 정의는 남지 않는다.

 

맺으며

 

AI는 답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답이 어디서 왔고,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스스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사필귀정은 더 이상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기술과 시스템으로 구현해야 할 성취가 되었다.

 

AI 시대의 인과응보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델에 반영했는가, 모르는 것은 학습과 실험으로 드러냈는가, 그리고 그 판단을 디지털 트윈이라는 구조로 남겼는가의 문제다. BAS와 DBSE는 사필귀정을 믿음의 영역에서 끌어내려, 검증 가능한 현실로 만드는 최소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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