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디지털트윈과 피지컬 AI,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메타버스의 데자뷔를 넘어 ‘판단의 위임’을 감당하는 방법
요즘 디지털트윈과 피지컬 AI라는 말이 넘쳐난다. 정책 문서, 기술 발표, 기업 전략 어디를 보아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풍경은 낯설지 않다. 메타버스가 그랬다. 모두가 말했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쓰는지에 대한 질문은 희미했다. 결과는 시연은 남았지만 판단은 남지 않았고, 기술은 있었지만 지혜는 없었다.
지금 디지털트윈과 피지컬 AI를 둘러싼 상황도 비슷하다. 단어는 앞서가지만, 사고는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문제 앞에서 기술을 찾는 이유
우리가 디지털트윈과 피지컬 AI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변수는 많고, 이해관계는 얽혀 있으며, 한 번의 결정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현실에서 직접 시험하기에는 위험하고, 데이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문제 앞에서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계산이 아니라 더 나은 판단이다. 디지털트윈과 피지컬 AI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둘 다 목적은 같다. 인간이 마주한 복잡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디지털트윈은 ‘보는 기술’이 아니라 ‘판단을 만드는 구조’다
디지털트윈은 흔히 오해된다. 3D 모델이나 실시간 데이터 시각화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본질은 전혀 다르다. 디지털트윈은 복잡한 현실을 목적에 맞게 단순화해 모델로 만들고, 그 모델이 믿을 만한지 검증한 뒤, 현실에서는 해볼 수 없는 선택들을 가상에서 먼저 시험하는 구조다.
즉, 디지털트윈은 생각을 대신해 주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더 깊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도구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 판단하게 만드는 장치다. 목적 없는 디지털트윈은 결국 보기 좋은 디지털 모형으로 남는다.
피지컬 AI, 인류는 처음으로 판단을 위임하고 있다
피지컬 AI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노동을 기계에 위임해왔다. 근육은 기계로, 계산은 컴퓨터로 대체했다. 그러나 피지컬 AI는 다르다. 피지컬 AI는 현실에서 행동하기 전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그 결정이 곧 물리적 결과로 이어진다.
이는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이다. 인간이 처음으로 판단과 결정의 일부를 기계에 위임하기 시작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지컬 AI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문명적 선택이다.
판단을 위임하면,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여기서 가장 위험한 말이 등장한다. “AI가 판단했다.” 판단을 기계에 위임할 수는 있어도, 책임까지 위임할 수는 없다. 누가 판단 기준을 만들었는지, 어떤 가정을 두었는지, 예외 상황에서는 누가 개입하는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는지에 대한 구조가 없다면 피지컬 AI는 혁신이 아니라 위험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명확하다.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 구조를 만들지 못한 시스템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켰다. 피지컬 AI는 그 문제를 디지털 세계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드러내는 존재다.
그래서 RTA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사전 모델링과 가상실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실은 언제나 모델 밖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센서 오류, 환경 변화,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은 실행 중에도 발생한다. 피지컬 AI는 실행 중에도 판단한다. 그래서 RTA(Run-Time Assurance)가 필요하다.
RTA의 본질은 단순한 안전장치가 아니다. 실행 중인 AI의 판단과 행동이 사전에 허용한 안전·책임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을 감시하고, 즉시 개입하는 구조다. 평상시에는 고성능 AI가 동작하되, 위험이 감지되면 검증된 보수적 제어로 전환하거나 인간 개입을 강제한다.
RTA 없는 피지컬 AI는 판단 위임이 아니라 책임 방기에 가깝다. 문명적으로 허용 가능한 판단 위임의 최소 조건이 바로 RTA다.
디지털트윈-RTA-피지컬 AI는 하나의 판단 체계다
이 세 가지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연속된 판단 체계다. 디지털트윈은 판단을 만들고 시험하는 공간이고, 가상실험은 그 판단의 한계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RTA는 실행 중 판단이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하는 장치이며, 피지컬 AI는 검증된 판단을 현실에서 집행하는 수단이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지혜의 체계는 무너진다. 하나는 공허한 시뮬레이션이 되고, 다른 하나는 위험한 자동화가 된다.
이번에는 정말 달라야 한다
메타버스의 실패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었다. 목적 없는 도입과 책임 없는 사용이 만든 결과였다. 디지털트윈과 피지컬 AI는 아직 같은 길을 갈 수도,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 갈림길은 기술 수준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똑똑한가”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무엇을 판단하려는가, 그 판단은 왜 옳은가, 실행 중에는 어떻게 통제되는가, 실패하면 무엇을 고칠 것인가, 그리고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이 질문을 끝까지 붙잡을 때, 디지털트윈과 피지컬 AI는 유행어가 아니라 인간이 복잡한 세상을 지혜롭게 건너기 위해 만든 진짜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