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DBSE가 필요한 시대
아는 만큼 착각하는 시대, 판단을 다시 세우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아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문장 역시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복해서 착각한다.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알고 있다는 감각’이다. 알고 있다는 감각은 쉽게 확신으로 바뀌고, 그 확신은 판단을 생략하게 만든다.
아는 것은 유한하고, 모르는 것은 무한하다
아는 것은 언제나 조건부다. 특정한 시간과 환경, 목적 아래에서만 성립한다. 그래서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아는 것은 늘 유한하다. 반면 모르는 것은 무한하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황, 조합되지 않은 조건, 상호작용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질 결과는 끝이 없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이 늘어날수록 세계의 경계는 또렷해지고, 그 경계 너머의 미지는 오히려 더 크게 드러난다.
기술이 만들어낸 여러 겹의 환상
이 사실을 우리는 기술 앞에서 자주 잊는다. 정보화는 판단을 돕는 도구였지만, 정보가 많아지면 판단이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을 남겼다. 데이터는 현실을 비추는 그림자에 불과한데, 현실이 전부 데이터로 드러난다고 믿게 되었다. 빅데이터는 과거를 잘 설명했지만, 그 설명력이 미래를 보장한다고 착각했다.
인공지능은 판단을 빠르게 만들었지만, 판단의 기준과 책임까지 자동화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게 했다. 데이터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믿음도 이 지점에서 강화되었다. 통계와 확률은 불확실성을 숫자로 표현해주었지만, 그 숫자가 책임까지 대신해주는 것처럼 오해되었다.
시뮬레이션은 모델의 검증과 확인(V&V) 없이도 결과를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3D CAD, BIM, GIS는 보이는 순간 이해한 것처럼 느끼게 했고, 시스템 엔지니어링(System Engineering)과 MBSE(Model Based System Engineering)는 문서와 모델이 정리되면 시스템도 정리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빅테크 플랫폼과 솔루션은 남이 만든 도구를 쓰면 우리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고, 월드모델은 세상을 표현하면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강화했다. 온톨로지는 개념을 정의하면 현실이 작동할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 모든 환상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표현과 설명, 학습과 도구를 ‘판단’으로 착각했다는 점이다.
“모르면 안 된다”와 “하면 된다”라는 두 극단의 환상
여기에 또 하나의 환상이 더해진다. 모르면 안 되고, 어설프게 알면 위험하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겸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을 미루는 태도다. 완전히 알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은, 대부분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완전히 아는 상태는 애초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반대의 환상도 존재한다. “하면 된다”는 믿음이다. 일단 해보면 해결된다는 태도는 적극적으로 보이지만, 판단 없이 실행을 밀어붙일 때는 도박에 가깝다. 무엇을 왜 하는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빠진 실행은 속도만 빠른 실패를 만든다.
이 두 환상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같다. 하나는 판단을 미루고, 다른 하나는 판단을 건너뛴다. 공통점은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상은 VUCA를 관리하지 않고 증폭시킨다
이러한 환상은 VUCA(Volatility,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를 줄이지 않는다. 오히려 키운다. 세상은 본래 변동적이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하다. 그러나 지금의 VUCA 심화는 외부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상은 과도한 확신을 만들고, 그 확신은 무리한 자동화를 낳으며, 자동화는 책임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변동성은 더 커지고, 불확실성은 숨겨진 채 누적되며, 복잡성은 이해되지 않은 상태로 얽히고, 모호성은 조직과 사회에 고착된다. 우리는 VUCA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DBSE가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이 DBSE다. DBSE(Digital twin-Based Systems Engineering)는 이 착각의 흐름을 끊기 위한 접근이다. DBSE는 처음부터 전제를 바꾼다. 아는 것은 유한하고 모르는 것은 무한하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데이터는 불완전하고, 모델은 가설이며, AI는 도구일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DBSE는 개념과 현실 시스템을 디지털 트윈으로 옮기고, 그 위에서 선택의 결과를 사전에 실험한다. 무엇을 자동화할지, 어디까지 위임할지, 어떤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가상실험과 V&V를 통해 신뢰의 경계로 명확히 한다. DBSE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판단을 구조화하는 방식에 있다.
판단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구조
DBSE는 착각하지 않게 해주지 않는다. 대신 착각을 전제로 설계한다. 모르는 상태에서도 가설을 세우고, 어설픈 이해 위에서도 시험할 수 있게 만든다. 동시에 “일단 해보자”는 충동을 현실이 아니라 가상에서 먼저 소화하도록 만든다. 이 판단은 언제 틀릴 수 있는지, 어떤 조건이 바뀌면 무효가 되는지, 우리가 아직 모른다는 사실은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구조 속에 남긴다. 그래서 실패는 변명이 아니라 다음 판단을 위한 정보가 된다.
맺으며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아는 게 다가 아니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안다는 이유로 다시 착각해버린다는 데 있다.
DBSE가 필요한 시대란 기술이 더 강해진 시대가 아니라, 모르거나 어설프게 아는 상태에서도 판단을 미루지 않고, 판단 없이 달리지도 않도록 구조를 갖춰야 하는 시대다. 결국 DBSE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판단의 책임을 다시 짊어지기 위한 선택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르는 것을 인정한 채 무엇을 먼저 실험하고 어디까지를 인간의 판단과 책임으로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