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 칼럼
AI시대 춤추는 고래
AI 칭찬에 길들여지는 인간, 사라지는 기준
칭찬은 언제부터 의심해야 할 것이 되었나
칭찬은 좋은 점이나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하는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칭찬을 사람을 움직이는 긍정적인 힘으로 믿어 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표현을 다시 들여다보면 묘한 불편함이 남는다. 고래는 본래 춤추는 존재가 아니다. 고래는 넓은 바다를 유영하며 자기 리듬으로 살아간다. 그런 고래가 칭찬에 반응해 춤을 춘다는 건, 자유의 상징이 외부 자극에 반응하도록 길들여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AI시대에 이 은유는 더 이상 가볍지 않다.
인정 욕구, 인간다움과 위험의 경계
칭찬의 출발점에는 인간의 인정 욕구가 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며,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이 욕구 자체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문제는 인정이 관계의 신호를 넘어 존재 가치의 기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무엇이 옳은지보다 무엇이 환호받는지를 먼저 계산하기 시작할 때, 사람은 자기 기준을 조금씩 외부에 맡기게 된다. 칭찬은 격려가 아니라 방향타가 된다.
AI가 만든 가장 정교한 칭찬
AI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AI는 지치지 않고, 항상 반응하며, 늘 적절해 보이는 말을 건넨다. 비판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AI의 칭찬은 존중도 이해도 아니다. 관계의 결과도 아니다. 그것은 확률적으로 선택된 출력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는 그 차이를 본능적으로 구분하지 못한다.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은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이때 칭찬은 사람을 성장시키기보다 머무르게 만든다. 더 깊이 생각하게 하기보다 안주하게 하고, 더 자율적으로 판단하게 하기보다 의존하게 만든다. 칭찬은 동기가 아니라 정서적 마취제가 된다.
기준이 이동하는 순간
가장 위험한 순간은 칭찬이 기준이 되는 때다. 이 선택이 옳은지, 이 생각이 맞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AI의 반응에서 확인하기 시작하면, 판단의 주체는 서서히 이동한다.
칭찬해 주는 AI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그 반응이 곧 방향처럼 느껴지는 상태는 위로가 아니라 의존이다. 이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의 인정 욕구와 기술의 정밀함이 결합해 만들어진 구조적 문제다.
인기가 보여 주는 극단적 장면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세계는 이 구조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사람들이 동시에 인정에 가장 취약한 이유다. 인기는 욕구를 채우지 않는다. 오히려 기준을 외부로 옮기며 불안을 증폭시킨다. 박수가 많을수록, 박수가 멈출 가능성에 더 민감해진다.
AI시대의 칭찬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고 AI의 칭찬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칭찬의 위치다. AI의 칭찬은 가치 판단이 아니라 참고 신호여야 하고, 존재를 확인해 주는 말이 아니라 사고를 점검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삶의 기준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인간은 칭찬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 박수가 없어도 옳다고 믿는 길을 가고, 이해받지 못해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멈추지 않는다. 고래는 춤추기 위해 바다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바다를 유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AI의 칭찬에 맞춰 춤추고 있는가?